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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도암에서 발길을 계속 옮겨 보조암골 계곡 다리를 건너
북쪽으로 300m 가면 제6세 원감국사(圓鑑沖止 1226~1293)
께서 창건하였다는 감로암에 오르게 된다. 담장으로
상·하대가 구분되었는데 하대의 2층 건물 관음전과 상대의
별당 요사가 모두 목조 건축물이 아니라서 부자연스럽다.
이는 6·25때 소실된 것을 1971년과 1976년 2차에 걸쳐
진일심화(陳一心華)보살이 중건한 결과이다.
옛 기록을 살펴보면 1775년부터 다음해까지 묵암스님이
주석했으며 1842년에 혁암(奕庵)·후원(厚源)스님 등이
영취루(暎翠樓)를 앞마당에 세웠다. 이어서 1879년에는
경원(敬圓)스님이 본채를, 1891년에는 용선(龍船)스님이
정문을 중수했고, 1920년에 성봉(性峰)스님이 동별당을
새로 세우기도 했다. 1935년에는 금당(錦堂在順 1899~ 1973)스님이 별당을 해체하여 큰 절 문수전 증축에 사용했다.
1892년에는 호붕(浩鵬振弘1863 ~ ?)스님이, 1925년에는 동운(東雲處機)스님이 주석하였다.
1904년에 조성 봉안했던 상단 후불탱화(금어 香湖妙英)는 모르는 시기에 큰 절 약사전에 이안되어있다.
2층 관음전 난간에서 남쪽을 향해 서면 큰 절을 감싼 산 능선 연봉들이 연꽃잎을 이룬다. 천자암 뒷산인 대장봉과
제자(帝字)형의 조계봉이 유다르다.
텃밭 끝 학의 형국 머리부분에 원감국사비(1700년 다시 세움)가 동향으로 왼쪽을 보고 서 있다. 좌대 돌거북이
머리를 치켜들고 있다. 거북의 시선을 따라 가면 앞 고봉등이 가려지지만 바로 원감국사 부도와 연결된다.
원감국사는 수녕(遂寧, 현재 長興) 위(魏)씨로 19세 때 장원급제하여 10년간 외교관으로 봉직하면서 일본을
방문하기도 했다. 감로암이 한때 국제선원이었던 것도 이 인연의 한 줄기였을까. 29세에 득도(得度)하였고 5세
원오국사(圖悟天英 1215 ~1286)의 뒤를 이었다. 시문에도 능하여 어록 등이 전한다.
이 당시 동아시아는 미증유의 몽골제국 정복 전쟁으로 인한 수난의 시대였다. 원 세조(世祖 쿠빌라이칸 1215
~ 1294)는 1273년에 다음해의 일본 정벌을 앞두고 전쟁물자 준비를 고려에 부담 시켰다. 이때 송광사의 사전(寺田)도
전비 충당에 편입되자 사찰 경영에 큰 어려움이 닥쳤다. 이에 원감국사는 원 세조에게 청전표(請田表)를 올려
완복(完復)시켰다.
1275년에는 원 세조의 초청을 마지못해 응하니 빈주(賓主)와 사부(師傅)의 예로 대하였다. 보물 제 1376호인
티베트문법지(Tibet文法旨)도 이와 관련된 유물로 전한다.
스님의 문집인 원감국사집(素星圭 역)을 보면, 백성의 곤궁함은 최악의 상태이며 스님들의 생활도 마찬가지여서
영남지방의 참상(1280년, 시제No.79)과 10년간 장맛을 보지 못한 절 살림(시제 No.92) 등의 시가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장흥군 부산면 구룡리 뒷산의 병풍바위 상부에는 국사의 상이라 구전되는 선각 묘사된 초상이 있고 장원봉(壯元峰)·
거말봉(居末峰) 등도 남아 있다. 감로암 뒤쪽에 8세 자각국사(慈覺道英. 수선사 주 130I ~1308경)의 부도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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