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광사 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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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해 약탄(影海 若坦)은 무용 수연(無用 秀演)의 법제자9法弟子)이다. 無用 秀演이 性 聰(성총)의 弟子이고 性聰은
翠微(취미)의 弟子(제자)가 되는만큼 影海 若坦은 翠微의 손제가 되는 셈이다.

이러한 系譜(계보)는 어떻게 보면 낡은 族譜(족보) 놀음과 같은 느낌을 줄지 모르나 지나칠이만큼 탄압을 받았던
朝鮮朝 佛敎의 계통을 세우는 가장 기본적인 작업이 되므로 새삼 그 중요함을 강조하게 되는 것이다.

여하튼 약탄(若坦)의 스승이 되는 무용 수연(無用 秀演) 역시 조계산 송광사에서 공부를 한만큼 그의 弟子인
影海 若坦 역시 송광사는 떼어놓을 수 없는 人物인 것이다.

影海 若坦의 字는 守訥(수눌)이고 俗姓(속성)은 光山金氏, 그리고 出生地는 전남 고흥군 분천(全南 高興郡 粉川)
이었다. 현종(顯宗) 9年에 태어나 10歲에 능가사(楞伽寺)의 得牛長老를 恩師로 하여 出家하였다. 17歲에 처음으로
無用스님 을 알현(謁見)하고 그에게 자사상계(資師相契)해 줄 것을 간청했다. 18歲 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체발(剃髮)
수계를 받고 22歲부터 경법(經法)을 배워 정진하기 시작했다. 이 사이 16歲 때 아버지를 여의였고 28歲에는 어머니
마저 잃었다. 28歲 이후 모든 현상 세계가 오직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선지(禪旨)를 깨닫고 침식을 잃어 가며
참선(參禪) 정진을 하기에 이르렀다.

37歲에 봉산(鳳山0의 청으로 자수암(慈受庵)에 들어가니 수백 명의 學僧들이내집(來集)하여 배웠다. 55歲 때
工?에게 命하여 53佛의 그림을 그리도록 하는 등 그의 행적은 여러 면에서 두드러지고 있다. 경종(景宗) 3년, 이미
만년에 이른 그는 회향처를 구하듯 보조의 부도에 들어갔다. 87歲인 영조 30年에 자신의 法을 풍암 세찰(楓巖 世察)에게
물려준 후 正月 미열을 보이자 임종이 가까웠음을 알고 목욕후 대중들에게 임종의 게(偈)를 말하고 단정히 앉아
입적였다.

그는 박학(博學)하고 다식(多識)하였으며 佛敎뿐만 아니라 內外의 모든 서적을 열람하였고 또한 음양 수학(陰陽 數學)
에도 통달하였다. 지조 있는몸가짐이며 대중들에게 항상 장중한 자세를 취하고 예법 또한 어그러짐이 없었다고한다.

그에게는 3卷의 文集(문집)이 있었으나 지금 2卷은 散?되어 없고 오직 詩集 1卷만이 若坦의 文集으로 전해 오고
있다. 그러나, 이 詩句들의 내용은 그의 사상을 반영하기에 충분한 알찬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의 遺骨(유골)을 수습하여 능가사와 송광사에 탑을 건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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