若人靜坐一須臾 약인정좌일수유
勝造恒沙七寶塔 승조항사칠보탑
寶塔畢竟碎爲塵 보탑필경쇄위진
一念淨心成正覺 일념정심성정각
누구나 잠시라도 고요히 앉았으면
수많은 칠보탑을 쌓는 것보다 나으니,
보탑은 부서져 티끌이 되고 말지만
한 생각 깨끗한 마음은 부처를 이룬다.
달마대사가 서천에서 처음 중국에 도착했을 때, 불심천자(佛心天
子)라고 알려진 양(梁)나라 무제(武帝)는 달마대사를 초청하여
대화하면서 다음과 같이 물었다.
“내가 천자가 된 후 지금까지 절을 짓고 경전을 만들고 탑을 쌓고
스님들에게 공양하기를 많이 하였는데 내게 무슨 공덕이 있습니
까?”
이 말을 듣고 달마대사는 “아무 공덕이 없습니다<所無功德>”라
고 대답했다.
양무제가 이어 묻기를 “어떤 것이 성제(聖諦)의 제일가는 뜻입니
까?” 하니, 달마대사는 “텅 비어 성스러움도 없습니다<廓然無聖
>.”라고 하였다.
양무제가 다시 묻기를 “지금 마주 대하고 있는 당신은 누구입니
까?” 하니, 달마대사는 “모릅니다<不識>.” 하였다.
이 이야기에 대해, 사람들은 양무제가 절 짓고 탑 쌓은 공덕을 자
랑하려다가 달마대사에게 오히려 무안을 당했다는 둥 이러쿵저러
쿵 폄하하는 말들이 많았다.
모든 것은 그 그릇에 따라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서로 견해가 다
르고 해석도 달라질 수 있다.
양무제는 평소 곤룡포 위에 가사를 걸치고 금강경을 즐겨 설하였
고, 그의 아들 소명태자도 금강경을 32분으로 정리할 정도의 내
공을 가진 분이었다. 양무제는 많은 불사를 하여 일반 승속들은
그를 불심천자로 추앙하면서 큰 공덕을 지었다고 온갖 아부를 하
며 찬탄하였다.
그러나 달마대사는 무제가 지은 공덕은 금강경의 가르침처럼 아무
런 상(相)에 집착하는 바<所> 없이 무주상(無住相)으로 지은 것
이라서 ‘공덕이 없다.’라고 하였다.
그리고 성제(聖諦)의 제일인 진리에 대한 물음에는 ‘모든 것이 공
(空)하여 성(聖)스러움조차 없다.’라고 하였으며, ‘그대는 누구
냐’고 하는 직설적인 물음에 그것은 부처님도 알지 못하고 그 어떤
사량이나 분별심으로 알 수 없으며, 진리는 말할 수 없는 불가설
(不可說)이며 불가득(不可得)이므로 ‘모른다’라고 하였다.
달마대사를 시험해본 양무제는 이처럼 신선하고 깔끔하게 걸림 없
이 대답하는 지기(知己)의 지음자(知音者)를 만나 서로 계합했던
것이다.
양무제는 달마대사가 인연 따라 지내면서 동토(東土)에 불법을
널리 전할 수 있도록 그를 붙잡지 않았다.
그리하여 달마대사는 소림사 등지에서 모여드는 많은 무리를 근기
따라 제도하며 선종의 기틀을 닦은 것이다.
달마대사가 중국으로 와서 교화하다가 서천(西天)으로 돌아가려
고 할 적에, 여러 제자를 모아 놓고 말씀하기를 “이제 때가 되었
다. 나의 가르침을 받은 너희들은 각자 얻은 바를 말하여라.” 하였
다.
그때 문인 도부(道副)가 말하기를 “저의 소견은 문자에 집착하지
도 않고 문자를 여의지도 않는 것으로써 도를 쓰려고 합니다.” 하
니, 달마대사는 “너는 나의 가죽을 얻었다.” 하였다.
총지(總持) 비구니는 말하기를 “제가 이해한 바로는 아난<慶喜>
이 아촉불국(阿閦佛國)을 본 것과 같아서 한번 보고는 다시 보지
않게 되었습니다.” 하니, 달마대사는 “그대가 나의 살을 얻었다.”
하였다.
멀고 먼 동쪽에 아촉불의 위신력으로 이루어진 불국토가 있는데, 그 땅은
칠보로 되어있고 의식주는 생각하면 저절로 나타나는 등의 공덕이 있으며,
삼악도(三惡道)가 없는 거기 태어나면 그 수행이 청정하여 물러나지 않고,
마침내 위없이 높고 바른 깨달음을 이룬다는 이상세계이다.
도육(道育)은 말하기를 “사대(四大)가 본래 공하고 오음(五陰)
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니, 달마대사는 “그대는 나의 뼈를 얻
었다.” 하였다.
맨 나중에 혜가(慧可) 대사가 나가서 절을 세 번 하고 그 자리에
서 있으니, 달마대사가 “그대는 나의 골수(骨髓)를 얻었다.” 하였
다.
그리고 혜가에게 “옛날 여래께서 가섭에게 부촉하신 정법안장이
전해져 나에게 이르렀는데, 내가 지금 너에게 부촉하노니 그대는
마땅히 잘 보호해 가지도록 하라.” 하였다.
달마의 가르침을 제자들은 이처럼 제각기 그릇대로 받아들이면서
가죽이나 살, 혹은 뼈나 골수를 얻었던 것이다.
뒷날 달마대사가 서천으로 돌아간 다음, 양무제는 달마대사를 추
모하면서 다음 같은 비문을 새겨 남겼다고 전해온다.
見之不見 보아도 보지 못하고
逢之不逢 만나도 만나지 못하여
古之今之 예전이나 지금이나
悔之恨之 후회스럽고 한스럽다.
이것은 아마도 사람들이 양무제는 유위법(有爲法)에 집착하여 달
마대사의 말뜻을 제대로 몰랐다고 폄하하면서 그렇게 입살에 올려
전해왔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무제와 달마의 만남을 다르게 말한다.
見之不見 보아도 본 것 아니고
逢之不逢 만나도 만난 것 아니니
古之今之 예전이나 지금이나
水流花開 물은 흐르고 꽃은 피네.
대중들은 잘 살펴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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